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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레옹'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 – 고독, 관계, 사랑 그리고 죽음

by freelife-6 2025. 3. 31.

영화 레옹 포스터

영화 레옹을 처음 접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킬러와 소녀라는 설정에 먼저 시선을 빼앗기게 됩니다. 뤽 베송 감독은 이 낯선 조합을 통해 단순한 액션 영화 이상의 것을 이야기하고자 했고, 실제로 레옹은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며 인간 내면의 깊숙한 곳을 건드리는 감정의 영화로 자리잡았습니다. 1994년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꾸준히 회자되고 사랑받는 이유는, 바로 그 감정의 진정성과 보편성에 있습니다. 이 영화는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감정, ‘외로움’과 ‘연결의 갈망’을 이야기합니다.

고독이라는 이름의 일상

레옹은 뉴욕의 한 작은 아파트에 혼자 사는 살인청부업자입니다. 그는 철저히 고립된 인물입니다. 말이 적고,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으며, 오직 일과 생존만을 위한 삶을 살아갑니다. 그의 집은 텅 비어 있고, 정리정돈은 철저하지만 따뜻함은 없습니다. 다만 유일하게 정을 주는 존재는, 작은 화분 하나입니다. 그는 그 화분을 매일 돌보고, 햇빛이 잘 드는 창가에 두었다가 다시 거실로 옮기고, 조심스럽게 물을 줍니다. 식물은 움직이지도 않고 말을 하지도 않지만, 그 고요함 속에서 레옹은 일종의 위안을 얻고 있는 듯 보입니다.

사실 이 화분은 레옹 자신을 투영하는 대상이기도 합니다. 어디에도 뿌리내리지 못하고, 그저 옮겨다니며 생존만을 이어가는 식물처럼, 레옹 역시 삶에 정착하지 못한 채 부유하는 존재입니다. 인간 관계는커녕, 누구와도 진심을 나누지 않는 그의 모습은 현대인의 고립된 삶을 상징적으로 대변합니다. 영화는 그의 일상을 반복적으로 보여주면서, 그가 얼마나 차가운 삶 속에서 감정 없이 살아가고 있는지를 관객에게 천천히 체감시키는 방식으로 서사를 전개합니다.

관계를 통해 흔들리는 일상

그런 레옹의 삶에 예기치 않게 등장한 인물이 바로 ‘마틸다’입니다. 어린 소녀 마틸다는 같은 아파트에 사는 아이로, 가정폭력과 방임 속에 자란 불우한 인물입니다. 그녀는 갑작스러운 가족의 죽음을 목격하고, 생존을 위해 레옹의 집 초인종을 눌러 도망쳐 들어옵니다. 이 장면은 이 영화 전체에서 가장 상징적인 장면 중 하나입니다. 고립된 레옹이 외부와 연결되는 첫 순간이자, 그의 삶이 감정적으로 변화하게 되는 출발점이기도 합니다.

초반에는 서로를 경계합니다. 레옹은 마틸다의 존재가 자신에게 위험이 될까 경계하고, 마틸다 역시 아직은 그에게 온전히 마음을 열지 못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두 사람 사이에는 미묘한 정서적 연결이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말보다는 행동을 통해, 또 시선을 통해 조금씩 서로를 이해해 나갑니다. 마틸다는 레옹에게 “총을 가르쳐 달라”고 말하고, 레옹은 처음엔 거절하지만 점점 그녀에게 휘말려 들어갑니다. 그렇게 그들은 ‘가족도 친구도 아닌’, 그렇다고 단순한 보호자 관계도 아닌 독특한 감정의 유대를 쌓아갑니다.

우리는 어떻게 사랑을 배워가는가

레옹은 마틸다를 통해 감정을 배웁니다. 그전까지는 존재의 의미도, 감정의 쓰임도 잘 모르던 사람이, 이 작고 불안한 소녀를 통해 다시 인간적인 삶을 배우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마틸다와 장난을 치며 웃고, 함께 식사를 하고,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그녀를 지켜주는 모습은 그가 이제는 단순한 ‘살인자’가 아닌, 누군가의 보호자가 되었음을 상징합니다. 반대로 마틸다 역시 레옹을 통해 처음으로 신뢰라는 감정을 체험합니다. 가족으로부터 사랑받지 못한 그녀에게 레옹은 삶의 유일한 버팀목이 됩니다.

이들의 관계는 단순한 감정 교류를 넘어서, 서로의 삶을 치유하고 변화시키는 ‘구원의 서사’로 이어집니다. 이 점이 바로 레옹이 단순한 액션영화에서 벗어나 예술영화로까지 평가받는 이유입니다. 이 영화는 사람과 사람이 어떻게 서로를 통해 다시 살아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마틸다가 레옹에게 말하죠. “당신은 내 삶을 망친 게 아니라 구했어요.” 이 대사는 영화 전체의 메시지를 가장 명확하게 전달하는 순간입니다.

죽음 속에서 피어나는 연결

영화의 후반부, 레옹은 마틸다를 지키기 위해 죽음을 선택합니다. 그는 경찰서에 홀로 침투해 적들을 해치운 후, 마지막 순간까지 마틸다를 도망치게 합니다. 그는 단순히 죽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위해 스스로 목숨을 내어주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이는 처음으로 사랑과 책임을 알게 된 한 남자의 마지막 선택이자, 그가 인간으로서 완성되는 순간입니다. 단순히 직업적인 ‘킬러’로서가 아니라, ‘사람’으로서의 삶을 마무리하는 것이죠.

마틸다는 레옹이 남긴 화분을 가지고 떠납니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그 화분을 땅에 심습니다. 이는 표면적으로는 작은 행동이지만, 의미적으로는 매우 큰 전환점을 상징합니다. 떠돌이 같던 삶에서 벗어나 이제는 ‘정착’과 ‘성장’을 선택한 것입니다. 마틸다는 레옹을 통해 삶의 방향을 바꾸었고, 그가 준 감정은 그녀의 내면 깊숙이 뿌리내리게 된 것입니다.

결국, 레옹이 우리에게 묻는 질문

레옹은 단순히 킬러와 소녀의 이야기로 치부될 수 있는 영화가 아닙니다. 이 영화는 고독한 존재들이 어떻게 다시 관계를 회복하고, 서로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매우 인간적인 이야기입니다. 특히 현대 사회처럼 개인화된 시대, 관계의 단절이 일상이 된 시대에는 이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가 더 크게 다가옵니다.

관계란, 완벽해야 가능한 것이 아니라 ‘함께 상처 입으면서도 지켜주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되는 것임을 이 영화는 보여줍니다. 사랑도, 책임도, 심지어 구원조차도 완전한 이들 사이에서가 아니라 결핍과 상처를 지닌 사람들 사이에서 자라난다는 것을, 레옹은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말해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