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고나다(Kogonada) 감독의 영화 콜럼버스(Columbus, 2017)는 화려한 서사나 극적인 갈등 없이도 깊은 울림을 주는 작품이다. 건축을 매개로 인간관계와 삶의 방향성을 탐색하는 이 영화는, 미국 인디애나주의 작은 도시 콜럼버스를 배경으로 현대적 건축물과 인물들의 감정을 섬세하게 조화시키며 진행된다.
영화는 한국계 미국인 진(존 조)과 건축을 사랑하는 젊은 여성 케이시(헤일리 루 리처드슨)의 만남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배경과 고민을 가지고 있지만, 건축이라는 공통된 관심사를 통해 점점 가까워지면서 삶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찾는다. 영화는 건축물처럼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과, 사람처럼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 사이에서 균형을 찾으려는 인간의 모습을 조명하며, 공간과 감정, 관계의 의미를 탐구한다.
본 글에서는 콜럼버스가 전달하는 메시지를 공간과 기억, 관계의 유대감, 개인의 성장이라는 세 가지 측면에서 분석해보고자 한다.
1. 공간과 기억: 건축이 말하는 삶
영화에서 건축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인물들의 감정을 반영하고 상징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케이시는 건축을 사랑하고, 도시에 있는 건축물 하나하나에 애정을 갖고 있다. 그녀에게 건축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삶의 한 부분이자 감정을 담아낼 수 있는 존재다.
그녀는 특정 건축물을 보면서, 그 건축물이 본인에게 어떤 의미인지 표현한다. 예를 들면, 그녀는 건물을 바라보면서
이 건축물이 처음엔 좋아 보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좋음이 사라졌다
라고 말한다. 이처럼 인간관계 또한 동일하다. 우리는 처음에 누군가에게 강렬한 감정을 느끼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무뎌지고 새로운 의미를 갖지 못한다.
반면에, 진은 건축에 대해서 무관심하다. 그는 심지어 아버지가 유명한 건축학자인데도, 건축을 케이시처럼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그러나 케이시랑 시간을 보내면서, 그 또한 건축이 단순한 구조물이 아니라 인간의 감정을 담아낼 수 있는 예술품이라고 깨닫게 된다.
이 영화는 건축적 공간을 통해 우리가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면서, 우리 인간관계에 대해 감정을 투영하는 방식을 나타내고 있다. 건축물이 단순히 우리가 바라보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감정을 반영해서 과거와 현재를 표현할 수 있다는 걸 내포하고 있다.
2. 관계의 유대감: 가족과 타인 사이에서
영화는 가족과의 관계, 그리고 낯선 사람과의 유대감이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보여준다.
(1) 진과 그의 아버지
진은 병상에 누워 있는 아버지와 오랜 시간 소원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그는 아버지가 자신보다 일에 더 집중했다고 생각하며, 아버지의 건축에 대한 열정이 가족을 희생시켰다고 믿는다. 그러나 아버지가 쓰러지면서, 그는 마지못해 콜럼버스에 머물며 과거와 마주하게 된다.
진은 처음엔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하지만, 케이시와의 대화를 통해 아버지의 삶을 다시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그는 아버지가 남긴 건축 작품과 연구를 접하며, 아버지가 자신에게 말하지 못했던 것들을 깨닫게 된다. 영화는 그 과정을 조용히, 그러나 깊이 있게 묘사한다.
(2) 케이시와 그녀의 어머니
반면, 케이시는 아버지가 없는 가정에서 자라왔고, 어머니를 돌보며 살아간다. 그녀는 어머니가 힘들게 살아왔기 때문에 자신이 이 도시에 남아 어머니를 돌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녀는 자신의 꿈과 미래에 대한 고민을 하며,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갈등한다.
케이시의 갈등은 우리 모두가 겪는 문제와 연결된다. 우리는 가족을 책임져야 한다는 의무감과, 자신의 꿈을 이루고 싶은 욕망 사이에서 고민한다. 영화는 이 두 가지 가치가 충돌하는 순간을 섬세하게 묘사하며, 관객들에게
진정한 책임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던진다.
결국, 진과 케이시는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위로를 주고받으며, 서로가 가졌던 감정적인 짐을 조금씩 내려놓는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인간관계가 단순한 혈연을 넘어, 공감과 대화를 통해 형성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3. 개인의 성장: 멈춰 있던 삶에서 한 걸음 나아가기
(1) 진의 변화
진은 처음엔 콜럼버스에 오고 싶어 하지 않았고, 아버지의 건축과도 거리를 두려 했다. 하지만 케이시를 만나고, 그녀가 건축을 사랑하는 이유를 듣고, 아버지의 연구를 다시 보면서 그는 조금씩 변화한다.
(2) 케이시의 선택
케이시 역시 성장한다. 그녀는 어머니를 돌봐야 한다는 책임감에 얽매여 있지만, 진과의 만남을 통해 자신을 위한 삶을 선택하는 용기를 얻는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그녀는 마침내 도시를 떠날 결심을 한다. 이는 단순한 이사가 아니라, 그녀가 스스로의 삶을 선택하고 한 걸음 내딛는 중요한 결정이다.
결론
콜럼버스는 건축을 통해 기억, 관계, 성장을 표현하고 있다.
이 영화는 공간과 감정이 어떻게 연결되는 것을 시작으로 우리가 인간관계 속에서 어떻게 변화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삶을 택하는지에 대해 깊은 성찰을 담고 있다.
영화를 다 보고 나는 세 가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 내가 익숙한 것에 안주하고 있나? 아니면 더 발전하려고 노력하고 있나?
- 가족과의 관계에서 이해와 대화가 얼마나 중요한가?
- 우리의 삶에 영향을 주는 것이 어쩌면 우리의 공간일 수도 있지 않을까?
콜럼버스는 이러한 질문을 던지며, 강렬한 메시지를 남겼다. 이 메시지는 대지에 우뚝 솟은 건축물처럼 우리 마음속에 오래 기억되고 남아 있을 것이다.